ㅇ 기고매체/일자: 이코노미조선(2025. 2. 24.)
ㅇ 기고자: 윤덕룡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ㅇ 온라인 기사 링크: '네가 먼저 하라'며 등 떠미는 정책 조합의 딜레마(윤덕룡 대표이사)
정책 조합(policy mix)은 통화정책과 재정 정책의 조합을 일컫는다. 미국의 정책 조합은 세계의 관심사다.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이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GDP의 26%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와 언론은 1년에 적어도 여덟 번씩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발표하는 통화정책에 집중한다. 특히 3월, 6월, 9월, 12월엔 FOMC 회의 후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과 경제 전망 발표가 있어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는다. 예상과 다른 금리 결정이 나오거나 경제 전망이 발표되면 주식시장을 비롯해 채권 및 외환시장까지 큰 반응을 보인다.
연준의 핵심 목표는 통화정책을 통해 미국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물가 안정, 최대 고용 유지, 금융 안정성 유지다. 연준은 FOMC 회의 결과를 발표할 때 항상 이 세 가지 지표의 수치를 공개하고,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한 금리 및 통화정책 내용을 발표한다.
경제정책의 또 다른 축인 재정 정책은 재무부의 몫이다. 재무부는 정부 재정 지출의 증감을 통해 미국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도모한다. 급격한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연준과 같은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고, 연준이 통화정책 변화를 추진할 때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하기도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0%로 낮추고 양적 완화를 통해 유동성 공급을 급격히 확대했다. 이에 맞춰 버락 오바마 정부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2010년 10%를 상회했던 실업률이 2016년 5% 이하로 하락했고,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이 정상화됐으며 금융 시스템도 안정을 되찾았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시기에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0%로 인하했고, 조 바이든 정부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시행했다. 통화정책과 재정 정책이 공조하는 정책 조합 덕에 경제가 조속히 회복됐고, 2021년에는 경제성장률이 6%에 달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 결과, 미국은 지난 10년간 2020년을 제외하면 꾸준히 2%대 중후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2024년 1인당 명목 GDP 세계 6위를 기록했다. 그 덕에 미국 연준과 정부는 통화와 재정의 성공적인 정책 조합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연준과 정부가 항상 협력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에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려는 행정부와 물가를 잡으려는 폴 볼커 연준 의장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볼커 의장은 기준금리를 20%까지 인상했고, 실업률은 10% 이상으로 치솟았다. 금리 충격으로 경제가 단기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물가가 안정되자 레이건 정부는 결국 연준과 협력 정책으로 전환했다. 도널드 트럼프 1기(2017~2020년) 정부 역시 연준과의 협력이 원만하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는 행정부에 맞서 파월 의장은 경제 과열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우려해 네 차례나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가장 큰 위협은 연준”이라며 공개적으로 연준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파월 의장을 해임하려는 시도까지 해 연준의 독립성을 위협했다. 경제정책을 담당한 기관이 상대방 정책에 개입하면 정책 조합은 쉽지 않다.
지난 1월 한국은행이 우리나라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추가 경정 예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자 정부의 거시경제 전문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기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재정 건전성에 영향을 주는 재정 정책보다는 한국은행의 선제적인 금리 인하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한국은행이 다시 KDI의 주장을 반박하며 “상호 경제 전망 모형을 공개하자”고 반응했다.
각 기관이 ‘네가 먼저 하라’며 상대방 역할에 개입하면 성공적인 정책 조합을 이루기 어렵다. 더 아쉬운 것은 미국처럼 정책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각 기관이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을보이지 않는 일이다.
출처 : 이코노미조선(https://www.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