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80원 선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정부 개입으로 달러당 1430원대까지 눌렸던 환율이 다시 고점 부근까지 올라섰다. 정부는 오버슈팅(overshooting· 과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외환 수급 점검 강화, 24시간 모니터링, 시장 교란 행위 엄정 대처 등 대책을 내놨다. 금융기관의 의무 보유 기준을 완화하고 선물환 포지션 규제도 조정했다. 시장의 외환 공급을 늘리기 위한 조치다. 해외 주식 매각 시 양도세 감면, 해외 자회사 배당금 환류에 대한 세제 지원도 추진한다. 국민연금은 ‘뉴 프레임워크’ 를 통해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에 더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필요하면 거시 건전성 조치로 외환 거래와 자본 이동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 장관이 원화의 과도한 평가절하를 언급하며 구두 개입에 나선 점도 눈에 띈다. 그런데도 고환율 기조는 꺾이지 않았다. 이는 정책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율을 움직이는 힘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단기 처방이 반복될수록 시장은 ‘근본 해법은 따로 있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둔다.
기존 정책 수단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국제수지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무역으로 돈을 버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해외투자로 돈을 버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1~11월 누적 투자소득수지는 294억680만달러(약 43조5000억원)다. 12월 통계가 더해지면 연간 흑자 규모가 300억달러(약 44조3000억원)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역대 최대였던 2024년 285억6550만달러(약 42조2000억원)를 경신한 기록이다. 2025년 투자소득수지가 경상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9%다. 지난해 무역수지는 780억달러(약 115조2000억원)로, 투자소득수지보다 많다. 하지만 무역수지는 정체·감소하는 흐름인 반면, 투자소득수지는 증가 추세다. 향후 경상수지는 투자소득수지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흑자’의 성격이 바뀌면 환율에 미치는 경로도 달라진다는점이다. 장부상 흑자가 곧바로 시장의 달러 공급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경로를 먼저 보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도 무역수지 흑자를 오랫동안 구가해온 나라다. 그러나 지금은 투자소득수지가 경상수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저출산·고령화로 성장 잠재력이 낮아지자, 1990년대 이후 해외투자가 급증했다. 초고령사회 진입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해외투자를 확대하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그 결과 투자소득수지가 무역수지를 앞지르게 됐다. 그럼에도 일본은 오랜 기간 엔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나타난 통화 약세는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첫째, 성장 기대 약화다. 저출산·고령화는 성장 잠재력을 감소시키고 통화의 미래 수요를 줄여 통화가치 하락을 유발한다. 국제 투자 자금은 단기 수지보다 중장기 전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둘째, 투자소득수지 흑자가 환율 강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외 수익을 현지에서 재투자하거나 외화로 보유하면 수치상 흑자가 환율을 하락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기업의 해외 이전 효과다.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가 증가할수록 고용과 생산도 해외로 이동해수출로 벌어들이던 외환 공급이 감소한다. 이 세 요인이 겹치면 환율은 ‘조금 높아졌다’ 가 아니라 ‘높은 수준에서 오래 머무는’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정책도 단기 대응만이 아니라 구조 변화에 맞춘 처방이 필요하다.
금융 분야의 단기 처방이 아니라 펀더멘털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투자 자금이 돌아올 수 있다. 환율 결정 메커니즘이 변화했기 때문에 외환시장 관리만으로 환율을 안정시키기긴 어렵다. 성장·투자· 자금 환류를 함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이코노미조선(https://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