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은 2월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에 부과한 상호 관세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렸다. 의회의 명시적 권한 위임 없이 관세를 부과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직권으로 시행 가능한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해 즉각 15%의 새로운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추가적인 관세정책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는 왜 이처럼 관세정책에 집착하는 것일까.
미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한 역사는 반복됐다. 독립 이후 초기 미국은 국가 재정 수입의 주요 원천으로 관세를 활용했다. 당시에는 조세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고, 연방 차원의 조세 징수 체계도 미비한 상황이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1789년 관세법(Tariff Act of 1789)에 서명한 것이 미국 최초의 체계적 관세 조치였다. 당시 수입품에 부과된 관세율은 품목별로 상당히 높았고, 관세 수입은 연방 정부 재정의 80~90% 이상을 차지했다.
1791년 12월 재무 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의회에 ‘제조업 보고서’를 제출하며 제조업 보호를 위한 정책 수단으로 관세를 제안했다. 해외 완제품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원자재에는 낮은 관세를 적용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1807년 미국이 금수법(禁輸法)을 시행해 대외 무역이 급격히 위축됐고, 이어 1812년 미영전쟁이 발발하며 실질적인 관세정책은 제대로 시행되기 어려웠다.
남북전쟁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북부 공업지역은 보호주의적 고율 관세를 지지했고, 공화당이 산업자본가를 대변했다. 반면 제조업 기반이 약했던 남부 지역은 수입품 가격 상승을 우려해 관세 인하를 지지했고 민주당이 이를 대변했다. 이 시기 평균 관세율은 20~40% 수준을 유지했다.
관세의 정치적 의미가 변화한 시점은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 재임기였다. 그는 1913년 연방소득세를 도입해 연방 재정 기반을 안정시켰고, 같은 해 연방준비제도법을 제정해 중앙은행 체제를 구축했다. 정부는 독자적인 통화·재정 운용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관세는 더 이상 핵심 재원으로서 의미를 상실했다. 윌슨 대통령은 관세 인하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 불안과 1929~33년 대공황으로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미국은 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제정했고, 일부 품목의 실질 관세율은 60%에 육박했다. 이에 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 등 주요 교역국이 보복관세로 대응했고, 미국의 수출입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대공황의 고통은 오히려 심화했다. 이후 미국은 1934~45년 32개국과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하며 무역자유화로 방향을 전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주도하며 자유무역 질서를 구축했다. 1947년 이후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2~5% 수준으로 낮아졌다. 당시 미국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자유무역은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세계로 확장하는 전략적 수단이었다.
미국의 자유무역 정책에 균열이 나타난 것은 1980년대 일본의 자동차·철강 산업이 미국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던 시기였다. 다만 당시에는 자발적 수출규제와 환율 정책 조정 등 제한적 보호조치를 통해 미국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부상은 단순한 무역 적자 문제를 넘어 기술 패권 경쟁, 공급망 안정, 나아가 국가 안보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기존 교역 관계와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해 미국의 경제적 이익, 기술 주도권, 안보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관세는 이러한 전략을 실행하는 핵심 수단 중 하나다. 트럼프 정부가 관세정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처: 이코노미조선(http://economychosun.com)